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케냐 태생의 생물학자. 다윈의 로트바일러. 울트라 다윈주의자. 그리고 전 세계 종교인들의 공공의 적. 아마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학자'를 뽑는 투표가 있다면 모르긴 몰라도 가장 강력한 1위 후보임에 틀림없는 사람. 1970년대에 발표한 <이기적 유전자>로 신다윈주의의 기치를 들어올린 이래 <확장된 표현형>, <눈 먼 시계공> 등 각종 책들을 발표, 결국 2006년에 세기의 문제작인 <만들어진 신>을 출간함으로써 종교를 상대로 대놓고 선전포고한 인물. 수식을 하자면 한도 끝도 없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이 사람이 드디어 2009년 말, 또 한번 우리에게 즐거움과 경악과 논란을 선사하기 위한 <지상 최대의 쇼>를 출간했다.

겉 표지에 당당하게 쓰여있는 한 줄의 문장. '35억년 진화의 증거'는 단순한 허풍이 아니다. 아니, 도킨스 자체가 그런 허풍을 쉽게 떨리도 없고, 당당하게 이야기 한 이상 허풍으로 끝날 리도 없다. <이기적 유전자>도 그랬고, <만들어진 신>도 그랬다. 그는 언제나 공격적이고 파격적이며 과감하고 날이 잘 갈린 칼과 같은 논리로 상대방을 부수고 찢고 박살내는 데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니까. 지금껏 도킨스의 책은 수비나 후퇴라는 단어랑은 전혀 관련이 없었다. 그건 그가 그만큼 정확한 과학적 증거와 그 증거가 뒷받침하는 탄탄한 주장, 그리고 시니컬한 말투로 상대방의 논리를 반박하는 문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세 번째 읽은 이 책을 덮으며 한 마디 소감을 쓰고자 한다.

이 책은 매우 유감스럽게도, 윗 문단과 같은 도킨스 특유의 스타일을 기대한 사람에게는 조금 실망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책의 내용이 부족하다는 뜻은 아니다. 도킨스가 노망이 들었다거나 앞에서 호언장담한 '진화의 증거'를 제대로 들이대지 못한 것도 아니다. 아니, 오히려 너무 자세히 설명을 해 주었기 때문에 탈이라고 할까? 이번 책은 좀 엄격하게 말해서, 다시금 도킨스의 진화론 견해를 되새김질하는 정도에 머무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울트라 다윈주의자, 다윈의 로트바일러라 불리며 신다위주의의 번견역할을 해온 도킨스는 이 책에서 지금껏 자신이 책이나 논문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주장해왔던 진화론을 재설명하며 이를 통해 진화론의 정당성을 또다시 입증하려 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창조론의 논리적 허구성을 탈탈 털어버리고 박살내는 것이 아니라, 진화론의 이론적, 물질적 근거를 보여주는 데에 좀 더 치중하고 있다.
지나치게 기대하면 실망도 크다. 뭐, 경제학적으로 말하자면 High Expectation, High Risk 인 셈이다. 딱 잘라 말해서 이 책은 <이기적 유전자> 보다 덜 파격적이고, <만들어진 신> 보다 덜 공격적이다. 여지껏 보여줬던 도킨스 답지않은 모습이 이 책에서 나온다(그렇다기보다 지금껏 이렇게 공격적인 책을 줄줄이 내왔다는게 신기할 정도다). 그러나 다행히, 도킨스 특유의 공격적인 어조, 날카로운 비판 능력, 시니컬한 문체는 여전히 살아있다. 다만 '이 이상, 이 이상!' 을 더 외쳤을 사람들에게는 만족감을 주기 힘들 것이다. 위에 말했듯이,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믿음을 확고히 하는데에 중점을 두었으니까.

그러나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진화론과 창조론은 입장, 논리, 근거 모든 면에서 서로 상반되는 주장이다. 즉, 진화론에 있어서 잘못된 것은 창조론에 있어서 옳은 것이며, 창조론에 있어서 잘못된 사항은 진화론이 써먹기 좋은 공격 소재인 것이다. 말하자면 '진화론의 당위성' 을 입증하는 것만으로도 창조론에 대한 훌륭한 공격이 되며, 이는 수비인 동시에 최적의 역습인 셈이다. 다만 그것은 표현의 차이가 여실히 드러날 수 밖에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만들어진 신> 으로 몇 년 묵은 체중이 속 시원하게 내려갔을 무신론자들에게 있어 이번 책은 기대치 이하가 될 것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이 책은 '창조론, 한 판 붙자!' 라기 보다는 '진화론 입문서' 쪽에 가깝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렇게 리뷰 글을 쓰고 있는 필자 역시도 생물은 고등학교 공통과학 수준(7차 교육과정으로 따지면 생물 1쯤?)의 기본 지식 정도밖에 없긴 하지만 보면서 이해하는데에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진화론의 기본 개념부터 시작하여 여러 시계, 자연선택과 유전자, 각종 화석, 그리고 분자 생물학적 증거까지 진화론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을 세심하게 설명하는 책이다 보니 '진화론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계몽서적'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책 서문에 도킨스가 적었던 '창조론자나 진화론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한' 책을 쓰고 싶었다는 말이 이 뜻이었구나, 할 정도로 자세하다. 내용은 전혀 부실하지 않다. 오히려 알차다. 이 책은 대단히 성실하고 집약적이며 보고 난 후에 남는 것이 많은 수작이다. 이 우주가 일주일만에 창조되고 인간의 역사가 1만년 밖에 되지 않았으며, 사람과 공룡이 방주 이전의 시대에 같이 살았다고 믿는 얼토당토않은 사람들을 향해서 눈을 뜰 것을 요구하는 책이다.

이것이 21세기 초강대국이라고 하는 미국 교육의 멍청하기 짝이 없는 현 주소다.
창조론 신자(책 뒤에 나오지만 미국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약 42%가 창조론을 믿는다고 하였다)가 너무나도 위험할정도로 많다는 사실에 개탄하는 도킨스. 그러나 그건 비단 미국의 문제 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역시 전체 국민들 중 천주교와 개신교의 비율은 무시못할 정도로 높으며, 신앙의 변질 형태 역시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여기서 신앙의 변질 형태는 성서 근본주의와 기복신앙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 중에서도 근본주의를 의미한다. 즉, 성서를 아무런 비판적인 이해 없이 쓰여있는 내용 그대로를 역사적 / 과학적 사실로 믿어들이는 주의를 말한다.). 그리고 부모의 종교가 자식의 종교를 결정지어버리는 비민주적인 행태에서 드러나듯이, 창조론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부모가 있는 집안에서, 자식이 진화론을 믿고 따르기엔 너무나도 큰 어려움이 따른다(물론 그렇지 않은 집안도 많을 것이다).
성경을 분석하고 그 시대 배경을 파악하고 난 후에 그 의미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가 모두 진실이라고 믿는 인간들. 세상에 빛이 생기고 어둠이 생기며, 땅과 바다가 생기고 생명체가 나오기 전까지 불과 일주일 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진실인양 떠받들고, 방주 이전에는 사람이 정말 수백 세까지 살아남을 정도로 수명이 길었으며 모든 인류가 한 종류의 언어를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당연한 역사라고 받아들이며, 공룡이 멸망한 이유가 노아의 방주에 타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시대착오적인 주장을 맹신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받아들일래야 받아들일 수 없는 '적'인 동시에, 틀림없는 세상의 과학적 진실이다. 그리고 이 책을 낸, 이제 70줄에 들어선 리처드 도킨스. 그가 건강함을 타고났다는 것은 과학적 합리주의자에겐 더할나위 없는 축복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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